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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방/아트 이야기방

[펌] 소련의 무성영화와 CF가 닮았다?

by tick-tock! 2009. 10. 27.
무비 QnA 
 
 지식iN 소련의 무성영화와 CF의 흡사한 점을 알려주세요    -rladydgk89

 


 

질문하신 '소련의 무성영화'는 '소비에트 몽타주'의 완성자인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영화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영화사상 손꼽히는 천재 중 한 명인 그가 영화라는 예술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그가 1920년대에 완성한 영화 미학을 21세기의 CF에서 발견할 수 있으니, 얼마나 위대한 영화감독이었는지 충분히 증명되는 셈이죠.


몽타주(montage)는 프랑스어의 'monter'(조합하다, 조립하다)에서 온 단어로, 일반적으로 쇼트(shot)와 쇼트를 붙여 신(scene)을 만들고, 그 신들을 모아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해가는 것을 말합니다. '편집'(editing)과 일맥상통하는 의미죠.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상업영화의 편집 테크닉은 1910년대 미국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완성자는 [국가의 탄생](1915)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W. 그리피스였죠. 그는 단편영화를 벗어나 좀 더 '긴 영화'를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었습니다. 그러려면 뭔가 체계적인 편집 테크닉이 필요했죠. 그래서 그는 클로즈업을 만들었고, 두 공간을 오가는 교차편집(cross cutting)을 고안해냈으며, 수많은 영상 문법을 창조합니다.


할리우드 고전 편집의 대원칙은 "편집이 이뤄지고 있다는 걸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에이젠슈타인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두 개의 쇼트가 '충돌'할 때 의미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거든요. 일단 비교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클립은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 중 한 장면입니다(전반부만 보시면 됩니다). 인종차별적 묘사가 거북하지만, 영화의 역사에서 '교차편집'이 탄생하던 순간이었습니다. 두 번째 클립은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1925)에 등장하는 유명한 '오뎃사 계단' 장면입니다.

  

 

두 클립의 가장 큰 차이는 그 '목적'입니다. 박진감을 준다는 점에선 비슷하지만 [국가의 탄생]의 교차편집은 '이야기 전개'를 위한 것이고, [전함 포템킨]의 몽타주는 '강렬한 효과'를 위한 것입니다. 에이젠슈타인은 변증법에 입각해, 쇼트 A와 쇼트 B를 맞붙여 놓으면 관객들은 AB가 아닌 C라는 새로운 의미를 창조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믿었습니다. 정반합(正反合)인 셈이죠.

여기서 에이젠슈타인이 사용한 몽타주의 방법론들은 CF의 편집 미학과 직결됩니다. 먼저 그는 쇼트의 길이를 점점 짧게 만들어 긴장감을 발생시켰습니다. 이걸 '계량적(metric) 몽타주'라고 합니다. '율동적(rhythmic) 몽타주'는 쇼트의 길이보다는 내용으로 인해 긴장감을 만듭니다. 계단을 내려오는 군인들이 지닌 율동감은 굴러 내려오는 유모차의 율동감으로 옮겨짐으로써 더욱 더 강렬해집니다. 유모차 안에 아기가 있다는 '내용'이 그러한 급박함을 만들어내는 거죠. 세 번째는 '음조적(tonal) 몽타주'입니다. 아래 클립의 전반부 1분 정도만 보시기 바랍니다. [전함 포템킨]의 부둣가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억압에 항거했던 한 군인의 시신이 항구로 들어오는 밤의 우울한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에이젠슈타인은 물결, 부표, 피어 오르는 안개, 갈매기 등의 풍경을 이어서 보여줌으로써 슬픔의 '정서'를 전달하는데, 이것이 음조적 몽타주의 방식입니다. '배음적(overtonal) 몽타주'는 위의 세 방식이 결합되면 관객에게 좀 더 추상적이고 복합적인 효과를 줍니다. 그리고 '지적(intellectual) 몽타주'는 말 그대로 지적인 정서들의 갈등에 기초합니다.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는 이후 실험영화에서 미학적으로 발전되고, 상업영화에서도 일부 수용합니다. 하지만 가장 충실한 계승자는 CF와 뮤직비디오였죠. 특히 짧은 시간 안에 상품을 구매자에게 각인시켜야 하는 광고는 CF는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를 종종 사용합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보죠. 아래는 한 이동통신업체 CF입니다.

 

클립 4  (클릭! 영상 재생)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를 이용한 이동통신업체 CF


 

 

 

 

 

 

 몽타주를 이용한 전형적인 CF죠. 두 요소가 충돌하며 의미를 만들어냅니다(지적 몽타주). 하나 더 보겠습니다. 이번엔 '보이스 피싱'에 대한 공익 광고입니다.

 

클립 5  (클릭! 영상 재생)
'율동적 몽타주'와 '계량적 몽타주'를 이용한 CF


 

 

 

 

 

 

 수직으로 내려오는 휴대전화와 전화 수화기가 있고, 공중으로 빨려 올라가는 사람들은 대립되어 '율동적 몽타주'를 이룹니다. 그리고 중간에 범죄자가 전화하는 장면이 매우 빠른 편집으로 삽입되었는데 이것은 쇼트의 길이를 이용한 '계량적 몽타주'고요. 마지막 CF입니다. 맨 뒤의 메이킹 필름은 빼고, 앞의 두 편만 보세요.

 

클립 6  (클릭! 영상 재생)
'음조적 몽타주'를 이용한 CF

 

 

 

 

 

 

 선정된 모델부터, 상품에 '자연'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이미지들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전함 포템킨]의 부둣가 장면에서 사용되었던 '음조적 몽타주'인 셈이죠. 지금까지 몇몇 예를 들어 보았지만, 거의 대부분의 CF에서 우린 소비에트 몽타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90년이 다 된 영상 미학이 이토록 장수한다니…. 정말 경이로운 일입니다. 물론 CF에 당시 에이젠슈타인이 역설했던 메시지가 들어있는 건 아니지만요.

 


 

 소비에트 몽타주로 제작된 대표적인 영화를 알고 싶습니다     -sirius6677          


 

에이젠슈타인처럼 영화 전체를 몽타주 방식으로 만든 영화는, 현재는 실험영화나 아방가르드 필름 이외엔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1920년대 이후, 그의 영화적 유산은 동서고금에 걸쳐 영향을 주었죠. 특히 영화가 민중을 계몽하고 교육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정신'은 다큐멘터리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1930년대 영국의 기록영화 감독들이 대표적이었죠. 정치적 선동을 하진 않았지만, 그들은 에이젠슈타인의 강령을 모토로 삼았습니다.


할리우드 스타일에 반기를 들기 위해 에이젠슈타인을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장 뤽 고다르가 대표적이었죠. 영화의 의미 형성 과정에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랐던 에이젠슈타인처럼, 고다르도 관객이 자신의 영화를 통해 사회적·정치적 질문을 던지길 바랐습니다.

 

몽타주의 '편집 방식'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시민 케인](1941) 같은 영화에도 몇몇 시퀀스에 몽타주 방식이 사용되었죠. 다소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앨프레드 히치콕은 자신의 편집을 '몽타주'로 간주했습니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에서 주인공(케리 그랜트)이 비행기에게 쫓기는 장면이나, [새](1963)에서 주유소가 폭발하기 직전의 편집을 보면, 히치콕 특유의 편집 스타일을 볼 수 있죠. 세르지오 레오네의 빠른 편집도 인상적이었고요.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아메리칸 뉴 시네마'에서도 에이젠슈타인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에서 보니(페이 더너웨이)와 클라이드(워렌 비티)가 난사 당하는 장면, [와일드 번치](1968)의 총격 신, [이지 라이더](1969)에서 볼 수 있는 면도날처럼 빠른 편집 등은 그 증거죠. 특히 코폴라는 에이젠슈타인의 신봉자 중 한 명이었는데, [대부](1971)의 세례 장면은 할리우드가 '지적 몽타주'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잘 보여주죠. 한쪽에선 세례가 이뤄지고, 한쪽에선 살인이 이뤄집니다. 그것은 빠른 편집으로 교차되고요. 조카의 대부가 된 마이클(알 파치노)와, 그가 사주한 살인들. 그러면서 마이클은 점점 범죄의 세계로 빠져드는 거죠. [지옥의 묵시록](1979)에서 윌라드 대위(마틴 신)가 커츠 대령(말론 브랜도)을 죽이는 장면도 '지적 몽타주'의 대표적 장면입니다. 커츠의 죽음과 소의 도살이 교차합니다. 그리고 브라이언 드 팔머의 [언터처블](1987)을 뺄 뻔 했네요. [전함 포템킨]의 계단 장면에 오마주를 바칩니다.

 

답변ㅣ김형석